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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에고 산행 에세이 중앙일보 9월호_스위스 뚜르드 몽블랑, Tour du Mont Blanc


스위스 뚜르 드 몽블랑_Tour du Mont Blanc, Switzerland


제가 처음 알프스산맥의 아름다움에 빠진 건 아마 어린 시절 토요 명화를 통해 보았던 “사운드 어브 뮤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름다운 마리아 선생님과 7명의 아이들이 둘러앉아 도레미송을 부르던 영화의 배경에 정말 눈부시게 반짝거리던 알프스산맥의 모습은 어린 시절 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작은 티브이 화면 속이었지만 수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빙하와 그 아래 산을 다독거리며 흐르는 끝없는 폭포들 그리고 그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그 뚜르 드 몽블랑으로 산타에고는 오늘 해외 원정 산행을 떠납니다.


세계 7대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뚜르 드 몽블랑(TMB)은 유럽의 최고봉인 몽블랑 산을 중심으로 알프스 산군을 한 바퀴 일주하는 긴 둘레길입니다. 트레일이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접경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산행 내내 각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 음식,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총 길이 110 마일에 대략 35,000 피트의 획득 고도를 가지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7-11일이 소요되는 장거리 트레일입니다. 일 년 중 6월에서 9월까지의 여름 시즌이 방문하기 가장 좋은 기간이며 별도의 퍼밋은 필요 없지만 이용할 수 있는 호텔과 산장의 수가 무척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개월 전에 미리미리 숙소를 예약해 놓는 부지런함이 필요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월요일 아침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동화 같은 도시 샤모니에 하나 둘 반가운 산타에고 회원님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분명 한주 전에 샌디에고 로컬 산행에서 만났던 분들인데 오늘은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 만나 안부를 묻고 있으니 뭔가 어색한 마음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인원 체크와 더불어 간단한 장비 점검을 끝내고 일행은 트레일 헤드까지 걷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이라면서 밝게 웃으시는 한 회원님은 설레는 마음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본 죠르노” 인사말을 건넵니다. 엽서 속에서나 나올 듯한 유럽식 카페에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한 에스프레소도 마셔보고 동네 식료품점에 들러 신선한 치즈와 과일을 점심으로 챙기기도 하며 즐겁게 걷다 보니 길은 천천히 인적이 뜸한 산길로 이어지며 그렇게 일행을 알프스의 자연 속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처음 이틀간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산길을 걷게 됩니다. Courmayeur에서 시작하여 그 유명한 Bonatti 산장을 지나 Grand Col Ferret 고개를 넘은 뒤 스위스의 La Fouly에 도착하는 다소 바쁜 일정입니다. 이 구간은 TMB 코스 중 가장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며 특히 몽드라 삭스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파노라마 풍경은 일행들에게 세상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트레일답게 길은 잘 정돈되어 있지만 오르막길 대부분이 스위치백 없는 급한 경사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급조절을 통한 현명한 체력관리가 필요합니다. 중간에 만날 수 있는 산장은 Bertone, Bonatti 그리고 Elena 총 3곳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한 한 잔의 맥주와 환상적인 이태리 음식으로 달랠 수 있는 천국 같은 장소였습니다. 특히 Elena 산장 앞에 앉아 있으면 바로 눈앞에 Pré de Bar 빙하가 마치 아이맥스 영화관처럼 광활하게 펼쳐지며 그 끝을 지긋이 바라보면 얼음 사이사이 숨겨진 수천 년의 역사가 바로 눈앞에서 재생되는 듯한 착각도 듭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7월, 산 정상에서 녹아내린 물줄기는 크고 작은 수십 개의 폭포들을 길 위에 뿌려 놓았고 그 중간중간 만날 수 있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특유의 쾌활함과 넘치는 에너지로 누구든지 손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무척 매력적인 민족이었습니다. 특히 음식에 진심인 이곳에서는 비싸지 않은 금액으로도 최고의 이태리 음식을 즐길 수 있었고 그날 즐겼던 프로슈토와 오징어 먹물 파스타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여행은 어느덧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며 오늘부터는 이틀간 스위스의 대자연을 걷게 됩니다. La Fouly에서 Champex까지의 지루한 구간을 버스로 건너뛰고 TMB 구간 중 고도가 가장 높은 Fenêtre d'Arpette 고개를 지나 Balme 산장에서 하루 묶은 뒤 프랑스에 도착하는 스케줄입니다. 이 구간부터 풍경은 초록의 수목 지대로 변해가며 일행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알프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평소에 볼 수 없는 동식물을 만나는 재미와 더불어 산 밑에서 보던 빙하를 바로 눈앞에서 거대하게 볼 수 있어 그 감동은 배가 되었습니다. d'Arpette 고개 구간은 날씨 여부에 따라 그 난이도가 무척 달라지기 때문에 산행 전 주의를 요했고 다행히 당일 날씨가 좋아 무사히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한숨 돌리며 바라본 정상에서의 풍경은 내가 지금 TMB 산맥 중 가장 높은 곳에 서있는 한 사람이라는 작은 감동과 함께 알프스산맥의 처음과 끝을 눈 안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해주었습니다. 내려오는 길 만났던 산양 가족들은 Balme 산장까지의 먼 길을 기꺼이 동행해 주었고 그날 밤 보았던 은하수와 유성우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일행들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TMB의 마지막을 장식할 여정은 프랑스입니다. 스위스에서 Balme 고개를 넘어 프랑스로 들어간 뒤 샤모니에 도착, 산 정상에 위치한 Aiguille du Midi 전망대와 마법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Lac Blanc 호수를 둘러볼 예정입니다. 프랑스 국경을 넘자마자 일행을 반기는 건 산 아래부터 정상까지 이어진 케이블카와 함께 트레일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다시 문명으로 돌아온 반가움과 더불어 등 뒤에 스위스의 대자연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반반 교차하지만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다시금 펼쳐진 프랑스의 숨 막히는 풍경과 함께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Lac Blanc 호수는 몽블랑 산 건너편에 위치해 있으며 한눈에 모든 TMB 코스를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마치 거울과 같은 호수 표면에 세상은 두개로 갈라지며 넓어져 이곳이 지구가 아닌 마치 외계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도 들게 합니다. Aiguille du Midi 전망대까지는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고 가게 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가끔 고산증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도 필수입니다. 그렇게 산 정상에서 찍은 인생 샷을 마지막으로 뚜르 드 몽블랑 해외 원정 산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짧지 않은 시간 서로의 등을 책임져 주었던 산행 동지들에게 서로서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산 후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던 로컬 식당에서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와인과 프랑스 요리를 맛볼 수 있었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주변의 하이커들과 서로의 무용담을 짧은 언어로 이야기하며 우정을 쌓아 갔습니다. 다들 유럽여행은 비싸고 가기 힘들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산을 좋아하고 그리고 이번 여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위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면 이곳 뚜르 드 몽블랑을 꼭 한 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타에고 산행 모임은 매년 3곳의 해외 원정 산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에 출발하는 아이슬란드 라우가베구르 트레일도 관심 있는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펼쳐진 아름다운 모든 산들을 다 볼 그날을 기대하며, Let’s hike!


산타에고 해외 원정 산행 정보: https://www.santaego.com/groupboard/haeoe-weonjeong-sanhaeng

글_Jay Lee (산타에고 회장), www.santae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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