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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ung Yang
Sep 08, 2022
In 산행후기 공모전
8월 어느 날, 지난번 동부 여행사진을 정리하려고 앉았지만, 습관적으로 산타에고 홈페이지의 ‘산행 스케줄’을 먼저 뒤져 본다. 이틀 뒤 San Gorgonio Peak 백패킹 일정을 보고 바로 신청! 정상이 11,503ft 니까 휘트니 보다는 낫겠지 생각하며... 올해 구입한 백패킹 장비 본전도 뽑고, 세상 귀찮은 여행사진 정리에서도 벗어나고, 가보지 못한 새로운 산에도 가니 일타 삼피! 출발일 아침 7시, 언제나 믿음직한 회장님의 카풀 차량에 탑승해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지난 산행이 어떻고, 백패킹 장비가 어떻고, 저기 보이는 저 피크가 무슨 산이라는 둥....LA가는 2시간이 이리 짧을 줄이야! 곰통까지 빌린 후 10시경, 트레일 헤드서 모두 모여 등산 시작! 산을 오를수록 포실하게 다져진 흙 길, 푸르른 나무, 무성한 숲, 귀여운 사슴들이 우릴 반긴다. 여긴 샌디에고 돌산과는 다르구나! 봄에 걸었던 하이시에라 같은 분위기도 나고 너무 좋은데!! 덕분에 초반 경사구간에서 뒷목을 잡아끄는 듯했던 배낭의 무게도 점점 가뿐해 졌다. 백패킹에 필요한 이런저런 생활 밀착형(!) 물건을 한껏 챙겨 오신...엄청난 무게의 배낭을 멘 분도 보이지만, 몇 달 전 입문 백패킹을 휘트니로 시작한(!) 놀라운 산타에고 회원들의 배낭은 이미 상당히 가벼워져 있었다. 배낭 무게는 물론이고 지갑까지 가볍게 만들어 준다는 울트라 라이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한참을 걷다 잠시 쉬는 중 한 분이 각종 간식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심지어 먼저 올라간 회원 분량까지 내손에 쥐어 주신다. 아뿔싸! 초반에 주신 수박주스는 맛있게 마셨지만, 이번엔 뭔가 말리는 느낌이다! 이 분도 울트라 라이트의 세계로 인도해 드려야 할 듯하다. 수분과 에너지 충전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두 시간 반쯤 걸었을까...아침부터 내내 산등성이에 걸쳐있던 구름이 불안한 소리를 내다 끝내는 비를 쏟아낸다. 제발 나무 구간에서 번개만은 치지 말아줘! 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번개 없는 마른천둥이 우르릉쿵쾅! 우르릉쿵쿵콰광쾅쾅! 굉음을 내며 우릴 계속 위협한다. 그렇게 생생하고, 사람 불안하게 하는 천둥소리는 처음이다. 그런 순간 산에 있어보니 알겠더라. 천둥, 번개, 비, 바람이 얼마나 무섭고 위협적인 존재인지. 역시 겪어봐야 아는 법! ^^; 즉시 준비해 온 레인자켓과 배낭커버를 착용하고 바삐 올라가는데, 선두로 올라가던 일행 두 명이 하산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오늘 캠핑장소인 High Creek 캠프그라운드에도 비가 오고, 정상 상황도 비 때문에 나쁘다고 하여 모두 내려가더라는 얘기!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올라가는 사람은 없고, 다들 바삐 내려가는 분위기이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잡고 위쪽 상황을 물어보니 다들 비슷한 얘기 뿐. 그날 우리가 가장 많이들은 얘기는 Be safe! 보통은 Have a good one! 이러면서 내려가는데 안전에 주의하라니.... 사실 우리는 고도가 9,250ft인 캠프그라운드 위로는 비가 안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정상까지 비가 온다니 충격적이다. 지상에는 비가와도 구름이 캠프그라운드 아래로 깔리니까 캠프까지만 가면 마른땅을 밟을 거라던 자타공인 날씨 장인 회장님의 운빨은 여기까지인가 생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에 비가 그칠 거라는 예보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한두 시간만 더 올라가 보자고 얘기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예상보다 빗줄기도 세고 두 시간 넘게 비가 그치지 않았지만, 대부분 처음 해보는 우중산행, 레인자켓과 레인커버 실착에 나름 재밌고 신나하는 분위기다. 촉촉한 빗방울이 뜨거운 공기를 식혀주어 시원하기도 하고, 뭔가 더 살아있는 듯 느낌도 든다. “어머, 저 우중산행 처음이에요!”, “사놓고 한 번도 못써본 레인쟈켓이랑 커버를 써보네요”, “알고보니 제건 레인쟈켓이 아니라 바람막이 였어요 TT”.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그런 우리가 스스로 봐도 약간 크레이지 해 보였지만, 덕분에 살짝 전우애랄까 산우애라고 해야 맞을까... 같이 걷는 일행들이 더 소중하고 또 하나의 추억을 공유하게 되어 왠지 모를 유대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두 시간도 더 넘게 비를 맞으며 High Creek 캠프그라운드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말끔히 개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 날씨 장인!!! 꼭 회장님하고 같이 다녀야겠어!! 그렇게 캠프에 텐트치고, 물도 채운 후, 가벼운 차림으로 우리는 노을맞이 정상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캠프에서 정상까지는 9천 피트가 넘는 고산지대라서인지 스위치백 등산로가 있는데, 몇몇 숏컷 러버 회원 분들은 계속 새로운 경로를 발굴하면서 급경사를 마다치 않고 쭉쭉 걸어 나갔다. 하지만 8천 피트면 벌써 고산반응이 오는 고산 최약체인 나는 물도 마시고, 애드빌도 먹고, 자연적으로 템포는 느려질 수밖에 없어서 아주 천천히 정상으로 향했다. 고산에만 오면 허파가 나 여기 있소 하고 외쳐대는 것이 인체의 신비를 아주 제대로 느낀다. 그래도 이정도가 어디인가? 휘트니에 비하면 그래도 견딜 만하고, 같이 걸어주는 산우도 있고, 비온 후라 날도 시원하니 희망을 갖고 가보는 거지! 천천히 걸은 덕분에 정확한 타이밍에 정상을 밟아, 영화에나 나올법한 샌 골고니오 노을과 LA 야경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빗속을 뚫고 올라 산에서 보는 노을은 그로 인해 더욱 아름답고, 심드렁하던 도시도 산에서 보니 아담하고 정감 있게 느껴진다. 이렇게 자연에서, 그리고 산타에고를 만나 얻은 기쁨, 환희, 그리고 희망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앞으로 돌아갈 바쁘고도 세상 지루할 현실에서도 위안이 돼 주리라 생각하며 산타에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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