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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에고 산행 에세이 중앙일보 7월호_하와이, 칼랄라우 트레일, Hawaii, Kalalau Trail


Santaego hikes kalalau trail in hawaii
Santaego hikes kalalau trail in hawaii
Santaego hikes kalalau trail in hawaii

하와이, 칼랄라우 트레일_Hawaii, Kalalau Trail


하와이! 눈부신 해변과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훌라 춤을 추는 미녀들이 가득한 이곳은 꿈의 파라다이스입니다. 모든 이들이 환상적인 여름휴가를 꿈꾸는 지상 낙원이지만 그 섬의 반대편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7개 트레일 중 한 곳인 칼랄라우 트레일(Kalalau Trail)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총 길이 22마일에 6,177피트의 획득 고도, 수시로 길을 막는 범람 하천들과 함께 Crawler’s Ledge 라 불리는 아찔한 절벽길로 유명한 이 트레일은 지난 수십 년간 매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하이커들의 수는 계속 늘고 있으며 이제는 경쟁이 치열해 그 방문 퍼밋을 받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할 정도인 칼랄라우 트레일, 과연 어떤 매력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지 오늘 저와 함께 그 이유를 한번 알아보시죠.

드넓은 태평양을 숨 가쁘게 날라온 비행기가 착륙한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한 하와이의 카우아이(Kauai) 섬입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습한 공기에 약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산타에고 회원님들은 서둘러 마음을 다잡고 서둘러 트레일 헤드로 향했습니다. 오늘 하는 산행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차 안의 공기는 언뜻 무거워 보였지만 사실 다가오는 미지에 대한 기대감에 다들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섬 반대쪽의 Na Pali Coast 트레일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장비를 점검하며 오늘의 도전을 준비합니다.


첫날 산행의 목표는 트레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하나코와(Hanakoa) 캠프 그라운드입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일행을 압도한 하와이의 이국적인 자연 풍경은 마치 제 자신이 영화 아바타의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작은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분명 맑은 날씨였지만 하늘 어딘 가에서 계속 뿌려지는 빗줄기 사이로 저 멀리 바다 위에 무지개가 아름답게 걸려 있습니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 몽롱하게 걷다 보니 어느덧 길은 퍼밋이 있어야 진입할 수 있는 Hono’Onapali 보호구역으로 이어졌으며 제 키를 훌쩍 넘기는 열대 식물들과 난생처음 보는 꽃과 새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첫 번째 캠프 그라운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텐트를 셋업 한 뒤 위스키를 한잔하며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하와이의 원시 정글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어제까지 치열하게 살던 샌디에고의 생활이 마치 꿈결처럼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일행들과 도란도란 오늘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다 내일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다들 아쉬운 하루를 마감하였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위로 칼랄라우 트레일의 둘째 날이 밝았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들 일찍 일어나 부랴부랴 떠날 준비를 합니다. 빨리 칼랄라우 해변을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출발했지만 얼마 후 Crawler's Ledge에 도착한 일행은 멍하니 서서 절벽 위의 길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름만큼이나 생긴 것도 무시무시한 이 길은 절벽 옆에 아슬아슬하게 뻗어 있는 대략 어깨너비 정도의 좁은 길이었으며 그 밑으로 이어진 천 길 낭떠러지 끝에 집채만 한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한 발만 잘 못 디뎌도 목숨을 잃게 되는 걸 알기에 일행은 깊은 심호흡 후 횡단을 시작하였고 서로의 안전을 체크하며 신중히 한발 한발 내디뎌 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절벽의 반대쪽 끝에서 밀려오는 성취감과 안도감에 환호를 질렀고 두려움을 극복해낸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Crawler's Ledge 이후의 길은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어졌으며 이국적인 하와이의 풍경을 즐기며 걷다 보니 어느덧 저 너머에 오늘의 목적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진홍색 토양으로 뒤덮인 Red Hill 구간을 내려와 마침내 도착한 칼랄라우 해변은 그동안 들어왔던 소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면 왜 사람들이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계속 이곳을 찾는지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새하얀 해변 바로 위로 수십 개의 산들이 마치 파이프 오르간처럼 캠프 그라운드를 삥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서로 공명하듯이 울려 마치 내가 자연의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서있는 듯한 기분을 전해주었습니다. 이틀간 혹사당한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백사장을 걷다 보니 그동안의 피로가 풀리며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행을 누군가 질투라도 하듯이 하늘 저편에서 서서히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하와이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말해주듯 방금 전까지 맑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검게 변했으며 하나 둘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일행은 신속히 철수를 결정했으며 올 때는 마냥 평화로 왔던 Red Hill 구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납게 변해 있었습니다. 모든 길은 슬러시 된 진흙들이 뒤엉켜 흘러내렸으며 마치 눈길 위를 걷는 듯 미끄러웠습니다. 한 발자국만 헛디뎌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눈 산행 경험이 많은 회원님들의 침착한 리딩으로 패닉에 빠지지 않은 채 신중하게 한발 한발 걸음을 이어갔습니다. 수시로 서로의 안전을 체크하며 천천히 산행을 이어나가 결국 안전한 베이스캠프 근처에 도착한 일행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눈앞에는 입이 딱 벌어지는 절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방금 내린 비로 인해 거대한 폭포 다섯 개가 산 정상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그 끝은 구름에 가려져 마치 용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영화 같은 풍경에 일행은 전율을 느꼈으며 오늘 이곳에 서서 이 경험을 하게 해 주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고난은 가면을 쓴 큰 행운이다”라는 영국 속담처럼 칼랄라우 트레일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일상에 돌아온 뒤 그 당시 했던 경험들은 많이 흐릿해 졌지만 그날 배운 산의 마음은 아직까지 생생히 남아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산타에고 하이킹 클럽은 매년 세 차례에 걸쳐 바다 건너 해외 원정 산행을 갑니다. 7월에는 스위스에 위치한 뚜르 드 몽블랑 트레일과 9월에 아이슬란드, 라우가베구르 트레일이 예정되어 있으니 이 일정을 저희와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지 산타에고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시는 모든 회원분들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길 기대하며, Let’s hike!


칼랄라우 트레일 퍼밋 정보: https://camping.ehawaii.gov/

글_Jay Lee (산타에고 회장), www.santae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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