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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에고 산행 에세이 중앙일보 10월호_로스트 코스트 트레일, Lost Coast Trail



로스트 코스트 트레일_Lost Coast Trail


캘리포니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1번 국도(California State Route 1)는 태평양의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자동차 도로입니다. 미국 서부 해안 전체를 관통하는 이 길은 가파른 해안 절벽과 능선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거침없이 길이 나 있지만 그런 1번 국도조차 너무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내륙 쪽으로 길을 돌려야만 했던 구간이 있습니다. 철벽 같은 산들과 천 길 낭떠러지 절벽들로 둘러싸여 끝끝내 사람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잊혀 져버린 해안, 바로 로스트 코스트 트레일 (Lost Coast Trail)이 그곳입니다. 수천 년간 태곳적의 모습 그대로 바다사자, 코끼리 물범 그리고 수달들이 터를 지키고 있는 마법 같은 장소, 그리고 모든 하이커들의 버킷 리스트에 적혀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이 길을 오늘 산타에고는 2박 3일 일정으로 백패킹을 떠납니다.

로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의 주 경계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샌디에고에서 쉬지 않고 달려도 대략 12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무척 먼 곳입니다. 이른 새벽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탄 산타에고 회원님들은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감 따위는 잊고 다가올 모험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설레는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여유 있게 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며 유명한 관광지들을 둘러본 뒤 밤늦게 Black Sands Beach의 호텔에 도착하는 스케줄입니다. 제일 먼저 덴마크를 작게 줄여 놓은 듯한 도시인 Solvang에서 데니쉬 빵과 모닝 커피를 즐긴 뒤 Morro Bay에서 Morro Rock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Bixby Creek Bridge를 통과하는 꿈결 같은 드라이브도 후, Monterey 피시 마켓에서 근사한 해산물 저녁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한 일행은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꼈으며 내일 시작할 하이킹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여행의 첫날을 마감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트레일의 시작 지점인 Mattole Beach Trailhead입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솜씨로 장비를 점검한 후 첫발을 내디딘 로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첫인상부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태곳적 해안의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비치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굽이굽이 펼쳐진 King Range Wildness의 산맥들이 앞으로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앞으로의 여정을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다가올 3일 동안 모질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견디며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 해변을 걸어 수십 개의 작은 하천과 언덕을 건너야 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을 넘어 정작 일행을 긴장시키는 건 따로 있습니다. Impassable Zone이라고 불리는 이 구역은 로스트 코스트 트레일에 총 3곳이 있으며 각각 0.5마일, 4.1마일 그리고 4.7마일의 길이로 평상시에는 바다 밑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지나가면 하루에 두 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이킹을 끝내기 위해선 꼭 이곳을 횡단해야 하며 해수면의 높이가 3피트 이하일 때만 하이킹이 가능하고 물이 빠져 있는 시간 또한 3~4시간 정도로 짧기 때문에 정확하고 신속한 스케줄 관리가 요구됩니다.


첫날은 Mattole Beach부터 Sea Lion Gulch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해변길을 걷습니다. 트레일은 큰 고저 차이 없이 곧고 길게 뻗어 있으며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함께 바람에 춤추는 갈대밭을 따라 이동합니다. 가는 중간중간 코끼리 물범과 수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며 언덕을 하나 넘을 때마다 그 밑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샘물들로 목을 축였습니다. 그렇게 일행은 오후 1시쯤 Impassable Zone에 도착하였으며 다행히 이미 물이 많이 빠져 있어 바로 횡단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총 4.1마일의 길이이지만 바닥은 미끄러운 암석과 자갈들로 이루어져 있고 안전을 고려해 한발 한 발 신중을 기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오후 5시쯤 다들 무사히 오늘의 캠프 그라운드인 Spanish Creek campsite에 도착할 수 있었고 따뜻한 모닥불 주변에 모여 진솔한 대화와 함께 깊어 가는 해변의 밤을 즐겼습니다.


둘째 날 아침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기분 좋은 파도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좀 더 게으름을 피우고 싶지만 오늘 갈 길이 멀기에 서둘러 캠프를 정리합니다. 오늘 걸어야 할 코스는 총 10.9마일이며 마지막 Impassable Zone의 횡단 거리는 4.7마일입니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부드럽게 불어오는 해풍은 연신 머릿결을 간지럽히며 지금 걷는 이 길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아 기분이 뭉클해져 갑니다. 가끔 트레일이 폭우에 휩쓸려 나가 끊어진 곳이 몇 곳 있었지만 함께 걸어가는 동료들과 힘을 합쳐 하나하나 헤쳐 나갔습니다. 2시쯤 도착한 Impassable Zone은 어제보다 좀 더 험하고 길었으며 방수 등산화와 발목 게이러 그리고 하이킹 폴에 의지해 조심조심 횡단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의 고군분투 후 회원님들은 해 질 무렵 Gitchel Creek 캠프 그라운드에 도착했으며 바다 옆 백사장에 텐트와 캠프파이어를 셋업 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선셋을 즐겼으며 그 뒤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하늘 가득 은하수를 배경으로 이틀째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가볍게 아침 식사와 캠프 정리를 끝내고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곧 이 길이 끝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트레일을 느끼고 싶어 가능한 천천히 걷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검은 화산재로 이루어진 해변과 곱디고운 모래사장을 따라가는 오늘의 코스는 때묻지 않은 천해의 주변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해변에 가득 피어나는 물안개 사이를 걷다 보니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기분이 몽롱하며 여기저기 선명한 곰 발자국을 따라가기도 하고 파도에 떠 밀려온 멍게와 조개들을 하나 둘 모으는 등 마치 바닷가에 놀러 온 아이처럼 즐겁습니다. 그러다 문뜩 해변 옆의 거대한 암석지대를 지날 때 작년 이곳에서 한 하이커가 Sneaker Waves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는 레인저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언제든지 무자비한 모습으로 인간을 벌할 수 있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며 다시 한번 존중하는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트레일의 끝인 Black Sands Beach에서 산타에고 회원님들은 서로 서로의 완주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옆 동료의 등을 두드려 주다 문뜩 뒤돌아본 그곳에는 여전히 트레일이 반짝거리고 있었고 도전을 끝낸 성취감을 넘어 이 길을 좀 더 걷고 싶다는 충동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다들 돌아가야만 하는 본연의 삶이 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샌디에고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이름처럼 세상에서는 잊혀 져버린 Lost Coast Trail이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들을 남겨 준 이 길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쉽게 잊혀버리는 요즘 세상이지만 평생 기억 속에 남는, 생각날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는 첫사랑 같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분들은 산타에고에 꼭 연락 주세요. 10년 뒤 뒤돌아본 오늘 하루가 인생 어느 날보다 눈부시고 아름답기를 기도하며, Let’s hike!


로스트 코스트 트레일 퍼밋 정보: https://www.recreation.gov/permits/72192

글_Jay Lee (산타에고 회장), www.santae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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