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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에고 산행 에세이 중앙일보 12월호_아이슬란드 라우가베구르 트레일, Laugavegur Trail in Iceland




라우가베구르 트레일, 아이슬란드_Laugavegur Trail in Iceland

 

아이슬란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도 이 나라를 찾는 수많은 여행자들은 여행 카탈로그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야외 온천에서 샴페인을 즐기는 자기 자신을 상상하며 비행기표를 예약하곤 합니다. 허나 대부분 비싼 물가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관광명소 그리고 오로라 한번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하루 종일 궂은 날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곤 합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어깨에 무거운 백팩을 메고 아이슬란드의 자연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갈 용기가 있다면 운 좋게 이 나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목격할 행운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몇만 년간의 시간을 가슴에 품은 채 차갑게 식어버린 푸른 빙하 사이로 마치 붉은 용암이 흐르는 혈관처럼 이어진 화산의 뜨거운 열정을 경험하러 산타에고는 오늘 아이슬란드로 떠납니다.


라우가 베구르 트레일 (Laugavegur Trail)은 아이슬란드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네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 7곳 중에 하나입니다. 불과 얼음의 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아직 활동 중인 화산과 빙하 사이를 걷게 되며 밤에는 텐트 위로 드넓게 펼쳐진 오로라를 감상하며 잠들 수 있는 보석 같은 장소입니다. 라우란드만가 (Landmannalaugar)에서 시작하여 쏘스모르크 (Þórsmörk)에서 끝나는 총 32.4 마일의 길 위에 모두 6개의 작은 산장이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주변에 텐트를 치고 저렴하게 야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별도의 퍼밋은 필요 없지만 오직 여름 기간에만 트레일을 오픈하며 대략적인 기간은 6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입니다. 여름 기간에는 백야 현상으로 낮만 계속되기 때문에 오로라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어두운 밤이 시작하는 8월 말 이후로 스케줄을 조정하셔야 합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9월의 어느 날 아침 아이슬란드 레이카비크 BSI 버스 터미널에 산타에고의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나타납니다. 어느덧 세번째 진행하는 해외 원정 산행이다 보니 다들 한결 여유 있는 모습에 긴장보다는 설렘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로서로 안부 인사를 전했습니다. 트레일 입구까지는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게 되며 약 3~4시간 정도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아서 달리게 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아이슬란드의 환상적인 자연 풍경에 지루할 틈도 없이 출발 지점인 라우란드만가 (Landmannalaugar)에 도착하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하이커들과 함께 산타에고 회원님들은 트레일 완주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신중히 장비를 점검하며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 뒤 대망의 라우가 베구르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첫날은 라우란드만가 (Landmannalaugar)에서 흐라픈티누스크 (Hrafntinnusker) 산장까지 7.5마일을 걸을 예정입니다. 트레일 헤드를 떠난 일행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아이슬란드의 야생으로 바로 던져 저 버렸고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면의 뜨거운 안개와 스모그 때문에 마치 다른 행성 위를 탐험하는 듯 긴장감이 넘칩니다. 최근에 폭발한 화산의 마그마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성암의 평야 지대를 지나면 길은 급격히 가팔라지며 일 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들이 어두운 산의 골짜기들을 하얗게 매워 풍경은 마치 알록달록한 얼룩말의 등 위를 걸어가는듯한 착각도 들게 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무지개가 하늘에 걸려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나무 하나 없는 이 척박하고 아름다운 산들은 수천 년을 이어 살아가는 이끼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청명하던 날씨는 고도가 높아지자 순식간에 어두워졌으며 정신을 차려보자 거센 바람과 함께 눈 폭풍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바뀐 날씨에 당황한 회원도 있었지만 출발 전 이미 충분한 리서치를 통해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니만큼 침착하게 장비를 눈 산행용으로 교체하였습니다. 중간중간 이곳에서 사망한 하이커들의 기념비들을 볼 수 있었으며 다시 한번 겸허한 자세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며 담담히 산행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기진맥진 도착한 산 정상의 산장 역시 캠프를 셋업 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거센 바람과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 때문에 야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좀 더 힘을 내서 산 밑에 위치한 알프타바튼 (Alftavatn)산장까지 산행을 이어 가기로 했습니다. 비록 체력은 이미 바닥나고 등 뒤의 백팩은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비명을 질러 댔지만 짙은 안개의 바다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토로파요쿨 (Torfajokull) 빙하의 모습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조난된 선원들을 이끄는 하얀 등대의 모습처럼 일행들에게 깊은 위로와 함께 기운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트레일을 걸어 밤늦게 도착한 캠핑장에서 모두들 깊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길을 같이 걸어준 서로 서로의 등을 두르려 주었습니다. 



산행 이틀째 어젯밤의 궂은 날씨가 무색할 만큼 너무나도 밝고 눈부신 하늘 아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캠핑장 바로 앞에 위치한 알프타바튼 호수는 잔잔한 물결 위로 푸른 하늘을 거울처럼 반사해 평소보다 두 배로 반짝이는 눈부신 날씨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출발한 오늘은 엠쉬티르 (Emstrur) 산장까지 총 9.5마일의 화산재 구간을 걷게 됩니다. 길은 큰 고저차 없는 평탄한 길이지만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크고 작은 하천들을 건너야 하며 특히 그중에 몇몇 강은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빨라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많은 하이커들이 이 구간을 라우가베구르 트레일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하며 온 세상이 검은색 화산재로 뒤덮인 사막 지역을 지날 때면 마치 지구가 아닌 달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에 정신이 몽롱 해지며 왜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요정과 거인들의 신화를 믿고 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멀리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미르달스예퀴들 (Mýrdalsjökull) 산의 정상이 눈에 들어올 무렵 일행은 캠핑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달콤한 위스키 한 잔과 하늘 가득 은하수를 배경으로 긴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삼 일째 아침, 빙하와 만년설 사이로 붉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모닝커피를 즐기는 호사를 누린 뒤 오늘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트레일의 최종 목적지인 쏘스모르크 (Þórsmörk)까지는 약 10마일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 구간의 지형은 무척 다이내믹하며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부딪치며 갈라지며 변형된 유기적인 지형들을 많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강들이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강을 건너지 않으면 송곳보다 차가운 물 온도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끼들 이외에는 살아있는 생명의 흔적을 보지 못했던 트레일 위에 하나 둘 야생 양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으며 길이 끝나갈 무렵 비로소 살아있는 나무들을 만나게 되자 밀려드는 감동에 잎사귀들과 하이파이브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트레일의 끝에서 일행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산행을 완주한 서로서로를 축하해 주었으며 인생 최고의 생맥주를 맞볼 수 있었습니다.



산타에고의 해외 원정 산행을 통해 세상을 걸으며 느끼는 가장 큰 교훈은 마음속에 넓어진 세상만큼 점점 같이 커가는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산을 향한 여행은 내 안의 작은 것들을 크게 만들어줍니다”라는 존 뮤어의 명언처럼 마음속에 공허함이 느껴지고 이곳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이신 분들은 산타에고의 문을 두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이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길 기대하며, Let’s hike! 



아이슬란드 라우가베구르 트레일 정보: https://www.fi.is/en/hiking-trails/trails/laugavegur

글_Jay Lee (산타에고 회장), www.santae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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